지난 2월 14일, JP Morgan의 CEO인 Jamie Dimon이 블록체인 기반의 코인 JPM Coin을 발행했다. 지난 2015년부터 줄곧

Bitcoin will not survive

Bitcoin is going nowhere

Bitcoin is a fraud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투자은행계의 초대형 거물이 코인을 발행했다는 이유를 들어 비트코인이 대박날 것이다, 암호화폐가 곧 세상을 점령한다는 종류의 이야기들이 또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지난 블록체인 비평 포스팅에 어느 분의 글을 인용하는 댓글이 달렸던데, 그 글에도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 시스템 or 거래 시스템이 기존의 금융-화폐-거래 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더라. 그 댓글에 구질구질한 댓글을 하나 달았는데, 한 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근데, 굳이, 왜, 블록체인으로?

(Source: GoodAudience)

 

Stable Coin 시대의 도래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이 인류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서비스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 기존 정부 인증 화폐의 대체
  • 계약의 중간 매개체를 없애는 Smart Contract

여기서 Stable Coin은 정부 인증 화폐를 대체하려는 목적과 맞닿아 있다.

Bitcoin을 비롯한 암호 화폐들이 정말로 화폐라면, 가치 저장이라는 측면에서 가격의 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들고 여행을 떠나는데 오늘 환전을 하면 1,000달러지만, 내일 환전을 하면 500달러 밖에 안 된다면, 지금 당장 100만원을 들고 있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행갈 계획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여러 화폐를 번갈아가면서 소비 지출에 써야하는 사람은 당장 급한 원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달러로 환전할려고 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대공황으로부터 구한 경제학자 John Maynard Keynes는 화폐 수요를 아래와 같이 구분했다

  • 거래적 동기 – 유동성 확보
  • 예비적 동기 – 가치 저장, 가치 측정, 저축
  • 투기적 동기 – 가치 변동에 대한 기대

이 3가지 동기 중 Bitcoin 광풍과 관련된 부분은 투기적 동기고, 저 위의 여행객의 사례는 예비적 동기라고 할 수 있다.

JPM Coin을 비롯한 최근의 Stable Coin들은 위의 예비적 동기에서 안정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투기적 동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형태로 코인을 발행하고 있다. 어떻게? 아예 가격이 달러와 1:1로 연동된다. (전문용어로 Pegging 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서, JPM Coin이 발행되었다는 이유로 코인 투기 열풍에 사람들이 더 끌려가야하는 구조적인 요인은 없다는 뜻이다.

Bitcoin, Ethereum을 위시한 기존의 코인 대부분이 정부 화폐와의 교환 비율을 시장이 정하는대로 맡겨뒀는데, 가격 널뛰기를 이용해서 “한탕해보려는 세력들”의 투기적 동기 때문에 가치 저장이라는 예비적 동기가 붕괴되었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 결국 투기적 동기를 없애는 형태의 코인이 발행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JPM Coin 이 외에도 시장에는 꽤나 많은 Stable Coin들이 있다. (TrustToken, MakerDAO, 각각 USD 20MM, USD 15MM을 2018년 6월, 9월에 모집) 심지어는 Stability를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코인 여러개들을 묶어 헷징을 시켜놓은 포트폴리오 형태의 상품도 나와있다. 국내에서 단순히 코인 찍어내는 몇몇 스타트업과 IT 회사들이 코인 몇 개 찍어서 돈 얼마 벌었다(???)고 주장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제대로 금융 시장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코인 기반 투자은행”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그런 회사들이 투기적 동기를 포기하고 Stable Coin으로 플랫폼을 이동 중이다.

(Source: Crypviz)

 

Stable Coin이 직면한 문제

가치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달러와 1:1 교환 비율을 맞추겠다는 Stable Coin들의 프로파간다를 보면서 아래의 세 가지 질문이 떠 올랐다.

  • 굳이 Stable Coin을 사야하나?
  • 계속 커지면 중앙은행을 대체하려고 할텐데?
  • 세금 추적은?

굳이 Stable Coin을 사야하나? – Bitcoin처럼 대박 폭등도 안 날텐데?

그 동안 Bitcoin, Ethereum 같은 이른바 “대장주” 가상화폐들로 거래적 동기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상점이 몇 개나 있었나? 한국보다 더 열린 자본주의 시장 구조를 갖춘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상점 몇 개 정도만 저런 코인으로 대금을 받아줬고, 그 마저도 코인 투기 열풍이 가시면서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Stable Coin은 심지어 가격이 계속 증가하지도 않는다. 처음 Coin을 발행할 때 나중에 코인 생태계 잘 갖춰지면 몇 배로 돌려준다고 그랬겠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코인 발행회사가 돈을 벌어서 1:1 교환 비율을 맞춰줘야한다. (전문용어로 지급준비금을 확보해야한다.) 그 발행사가 돈을 못 벌면 1:1 교환 비율을 못 맞춰줄 것이고, 시장에 거래되는 코인은 100만 달러치인데, 정작 회사는 10만 달러의 현금만 갖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생길 것이다. 그러다 Bank-run 같은 사건이 터지면 어쩔려고? 결국 부도가 나거나, 코인 발행사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떠 안아야 한다.

물론 그 전에 가격이 안정되어 있어서 투기적 수요가 없는 코인을 신규 구매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계속 커지면 중앙은행을 대체하려고 할텐데? – 중앙은행은 바보인가?

JPM Coin처럼 거대 은행이 계속해서 1:1 태환을 장기간 유지하고, 사람들이 달러대신 JPM Coin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초기투자비용을 지출한다고 생각해보자. 말 그대로 중앙은행이 되겠다는 뜻이다. 그럼 미국의 FRB는 가만히 있을까? 우리나라에 비슷한 코인이 대형화 되고 있으면 한국은행은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을까?

은행이라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지기 시작한 19세기 중엽부터 선진국들이 중앙은행을 설립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정부가 규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특정 기관이 돈을 마구 찍어내서 생기는 인플레이션을 막고, 경제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구조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 안전망 체제를 사기업이 운영하겠다면 안전성은 오롯이 그 기업 대표의 손에 달려있게 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구조인지 잘 알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유지하기 애매모호한 도시 국가들도 은행 연합체가 공동으로 화폐를 관리한다. (ex. 홍콩)

세금추적은? – 정부는 바보인가?

정부가 절대로 손 놓고 방관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근거를 들자면 바로 세금이다. 거위의 깃털을 뽑는 것처럼 야금야금 뜯어야한다고 15세기 영문학에 적혀있듯이, 정부는 오랫동안 민간으로부터 세금을 어떻게 걷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왔던 조직이다. 그런 조직이 세금 추척할 수 있는 방법을 잃는다면 가만히 있을까?

(Source: Crypviz)

 

Stable Coin 의 시작 = Smart Contract의 보편화? 암호화폐의 종말!

블록체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부를 없애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회주의라고 표현하던데, 필자의 관점으로는 무정부주의라고 표현하는게 맞을 것 같다. 돈 찍어내는 권리도 중앙은행에서 뺏어오고, 세금도 안 내고, 거기다 정부 없이 상호간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정부라는 중간 매개체를 대체하자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사람들, 일반적인 IT관계자들의 사고방식이 딱 이런 것 같더라.)

말을 바꾸면, Smart Contract로 기존의 중간 매개체가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게 결국 정부(and other authorities)를 없애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 사기꾼들은 세상 곳곳에 널려있고,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하는 Scalper들도 버젓이 활동을 하며 어떤 꼼수로 돈을 벌었는지 자랑질을 해댄다.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기 때문에 법이있고, 변호사라는 직업이 있고, 재판, 계약서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다 Smart Contract라는거 구조가 조금만 복잡한 계약에 쓸려고해도 설계를 다시해야한다. 자동화는 언제나 단순화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마 복잡한 계약 구조 다 맞춰주는 Flexible Smart Contract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과정 생략하고 결과값만 써 놓으면 되지 않냐는 자칭 블록체인 업체들 좀 있던데, Smart Contract가 뭘 대체해야하는지 좀 고민하고 사업해주시면 안 될까? 내 관점에 당신들은 블록체인으로 사업을 하는게 아니라, 블록체인으로 장부 정리만 하고 있을 뿐이다)

캘리포니아 사시는 분들께는 좀 미안한 말인데, 그 동네를 갈 때마다 “여기 사람들은 (거의) 다 뽕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개발자들 중 상당수가 세상 모르는 소리하면서 “코인 찍어내면 다들 쓸 것 같은데요?” 같은 철부지 티를 낸다. 서비스 만들어내고 그걸 사람들이 쓰도록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는지 모르는 소리 같아서 가끔 어안이 벙벙해진다. 인간이 문명 생활을 하고 지난 수천년간 쌓아올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을 그렇게 얕보지 마라.

정리하면, Stable Coin이 나왔고, 그 쪽으로만 시장이 집중한다는 이야기는 Smart Contract가 보편화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Smart Contract라는게 적용되는 분야는 한정되어 있는데 정작 블록체인을 이용한 코인으로 투기해서 돈 벌이가 되는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Stable Coin 그 자체도 코인 생태계 (Coin Economy)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초기 투자 비용을 지불해야하고, 기존의 화폐를 운영하고 있던 정부가 그 권리를 쉽게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JPM Coin 마저도 기껏해야 작은 커뮤니티에서 활용되는 화폐가 되거나, 아예 정부가 전자 화폐를 블록체인 형태로 찍어내는게 이 기술이 사회 시스템에 흡수되는 최대치일 것이라고 본다. (사실 정부가 찍어낸 돈이 제일 안정성이 높은 “코인” 아닌가?)

사실 블록체인이란 위조, 변조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암호화 기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Public Key, Private Key는 다른 암호화 모듈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굳이 블록체인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의 정보 위에 덧대어서 기록하는 아이디어, 즉 BGP를 풀어내기 위한 수많은 아이디어 중 가장 단순(무식)한 아이디어가 얹혀진 것에 불과하다. 근데, 중앙서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꿈꿨던대로) 자유도가 엄청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되려)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 관리가 극악으로 힘들어진다. (관련 논의는 다른 포스팅 참조) 관리자에게 감시당한다는 감성적 불만, 큰 돈 아닌 관리 수수료 지출이라는 금전적 불만 해소하려다가, 정작 시스템 관리가 안 되는 문제들로 생겨나는 수많은 부작용(Side effect)들을 어떻게 해결할래?

전자 투표나 상품 운반 채널 같은데에 블록체인의 정보 보안 방식을 활용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거 이미 다른 암호화 기술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작업이고, 굳이 관리가 극악으로 힘든 블록체인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럼 왜 JP Morgan이 Stable Coin을 찍어냈냐고? 미국은 “주주” 자본주의 국가다. 조그만 스타트업이나 초대형 투자은행이나, CEO는 주주들의 (입맛을 맞춰주는) 꽃놀이패인 것 같다ㅠㅠ

 

굳이, 왜, 블록체인으로?

저런 코인 발행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코인 생태계 (Coin Economy)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본다. 근데, 모든 Economy는 “소비”만 해서 되는게 아니라 “생산”을 할 수 있어야한다. 지금까지 나온 코인들은 “생산” 대신 코인 구매하라고 한 다음에, “어느 상점에서 코인을 쓸 수 있다”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얼마전부터는 코인을 벌 수 있는 서비스들에 대한 고민을 듣고 있는데, Stable Coin이어서 1:1 교환비율도 맞추고, 코인으로 급여도 받고, 상품도 살 수 있게되는 구조를 굳이 블록체인, 암호화폐로 해야하나? 그냥 중앙서버, 현금 기반으로 하면 안 되나? 정부가 찍어낸 돈이 제일 안정적인 코인이고 이미 코인 생태계가 다 갖춰진지 몇 십년, 몇 백년이 지난거 아닌가?

우리 Pabii가 이제 곧 출시하는 “Pabii Cash”는 위의 조건들을 다 갖췄는데 정작 블록체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필요가 없다는 사실, 이렇게 만들려다가 돈과 시간만 더 들어간다는 사실, 앞으로 관리가 더더욱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Pabii Cash에서 5,000원으로 커피 한잔 마시는데 쓸 수 있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2만원짜리 아이템을 구매하는데 Pabii Cash 5,000원, 현금 15,000원 결합으로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물론 이런 Full service를 다 갖추는데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코인도 안 찍어내고 그런 돈은 어디서 구하고, 사람들은 어디서 돈 5,000원을 만들어 내냐고? 우리는 당신들의 스마트폰 활용 내역 (앱 설치, 앱 오픈 같은 기본 데이터, 배터리 관리 앱이 쓰는 데이터들)을 가공해서 각 유저별 특성을 찾아낸다. (여기에 Factor Analysis, Instrumental Variable, Homogeneity Index 같은 고급 통계 모델링이 활용된다.) 그 특성에 맞춰서 광고 미세 타게팅을 해주는 DSP를 만들고, 거기서 나는 수익금 일부를 유저에게 돌려드리는 서비스다. (공식 명칭은 Psychographic Ad Targeting이다.)

참고로, 페XX북에서 여러분들이 Like 누른 값들을 이용해서 미세 타게팅하는 광고 서비스가 이미 오래전부터 출시되어 있다. 우리 Pabii의 서비스는 페이스북처럼 뻔히 보이는 Like들을 이용하는 정보 착취가 아니고, 기본 데이터를 고급 통계학으로 가공할 수 있는 높은 기술력으로 광고주들에게 광고 효율화를 위한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데이터를 제공한 유저들에게도 합리적인 보상을 제공해주자는 취지라고 보시면 된다. 그 사이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복잡한 데이터 가공 프로세스를 거친다.

내 데이터를 갖다 쓰면서 자기들 배만 불리는 서비스들의 행태에 일침을 가하고, 데이터를 제공한 분들께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 그 보상이 일상의 소비 생활과 연계된 구조, 이른바 핀(Fin)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빈(貧)테크 앱이다.

Pabii Cash 앱만 설치해놓고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쓰고 있으면, 광고주의 요구 사항에 맞춰 타게팅 광고가 나가고, 유저는 어떤 광고가 Pabii 시스템을 통한 광고였는지도 모른채, 여느 보상형 광고들처럼 무슨 행동을 특별히 해야하는 것도 아닌데, 슬금슬금 자신의 가상계좌에 돈이 쌓이는 구조다. 광고 효율성이 높은 유저일수록 보상액이 커질테니, 이전처럼 광고라고 무조건 기피하는 행태도 막을 수 있다.

정리하면, 블록체인으로 코인 생태계 조성 중이신 분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1:1 교환비율, 생산, 소비가 모두 다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아무도 블록체인에 관심이 없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4월에 베타버젼 Pabii Cash 앱을 공개하면서 최초 가입자 N명에게는 보너스 Pabii Cash를 얼마쯤 드릴 생각이다. 베타버젼을 달리 다른 곳에 홍보할 생각도 없고, Pabii 블로그 성실 방문자 분들께 드리는 혜택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스타트업이라 마케팅 예산이 별로 없어서 많이 드리진 못하니 양해해주시면 좋겠다 ^^)

코인 찍어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런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왜, 블록체인으로?

 


공지1: 2019년 3월 29일을 끝으로 데이터 사이언스 주제의 포스팅은 종료됩니다. 이 후에는 파비의 스타트업 운영 관계된 포스팅만 월 1회 작성됩니다.

공지2: 위와 같은날을 기준으로 댓글을 모두 삭제합니다. 추후에는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시리즈

이전 글: 데이터 사이언스와 비트코인

필자의 박사 논문은 은행 네트워크에 외부 충격이 와서 1 or 2개 은행이 그 직격탄을 맞고 (예시. 2008년 Bear Sterns와 Lehman Brothers), 그 때 파산하는 은행과 직접 금융거래로 묶여 있던 다른 은행들이 그 충격을 어떻게 흡수하고, 은행 네트워크 속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다른 제3, 제4의 은행들이 그 충격을 어떻게 피할까, 그런 위험을 계산식에 넣으면 기존의 은행 가치 평가 기준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번 포스팅 기준으로 윗 요약글의 핵심 단어는 “은행 네트워크, 직접, 간접, 충격 흡수, 위험을 계산식에 넣으면” 이라는 단어다.

(Source: meme)

지난 몇 달간 “비트코인 대박, 쪽박”이 언론에 오르내린 덕분인지 블록체인이 새로운 Buzzword로 부상하면서, 갑자기 “코인”이라는 단어가 안 들어가면 스타트업 펀딩을 못 받는다는 둥, “코인”을 모르면 스타트업계 사람이 아니라는 둥의 또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ICO*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고, 저렴할 때 미리 사놓고 나중에 비트코인처럼 대박나면 돈 벌어라는 식으로들 필자를 “꼬시는” 사람도 생겼다.

*ICO: 주식공개 (IPO)의 가상화폐 버전, 코인 거래 시장에 신규 상장하는 코인을 말한다.

뭔가 여의도 증권사에서 세일즈하는 사람들이 IPO하는 주식 물량을 다 소화해야되니 돈 있는 사람들 쫓아다니며 얼마씩 투자하면 나중에 큰 돈 된다고 “썰”을 푸는 것 같은 느낌이 좀 많이 든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저런 식의 세일즈 하는 사람들 중에 가상화폐의 핵심인 블록체인이 무슨 기술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 블록체인의 시초 – 외환 송금

블록체인을 좀 (많이) 간단하게 설명하면,

A. 둘이 서로 거래하고,

B.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C. 그 거래를 다른 사람들이 다 승인하고,

D. 승인 내용을 다른 사람들 블록 안에 기록하고,

E. 승인하고 기록한 블록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는 시스템

F. 수수료를 “가상화폐”로 지불

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Source: SpotCrime)

제일 먼저 이 시스템을 이용하려고 했던 서비스는 외환 송금이었다. 국가 A에서 국가 B로 송금하려고 할 때, 화폐가 다르기 때문에 환전을 해야하는데, 환율은 국가 A의 외환 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 B의 외환시장에서도 독립적으로 결정된다. 문제는 국가 A의 은행a가 국가 B의 은행b로 송금할 때, 각 국별로 외환 담당하는 은행을 우선 거쳐야하고 (한국은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국가별 중앙은행을 거쳐야하고 (대량 외환 유출로 IMF 구제금융 시즌 2가 일어나는걸 한국은행이 가만히 둘리가…), 또 국제 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 (SWIFT)를 이용한다. 스위프트는 국제적인 은행연합체(BIS)에 의해서 관리된다. 이게 40년 전에 구축된 시스템인데, 해외 송금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시간도 하루, 이틀 걸리고, 은행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많이 저렴해지긴 했지만…)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보니 은행들은 가격 변동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항상 금융시장에서 헷징 (Hedging)을 한다. 환율이 변동된 부분만큼 보상을 받거나, 차익을 지불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에서 해외직구로 카드 결제를 하고나면, 월말 카드 명세서에 총 거래 금액의 0.2% ~ 0.35% 정도에 해당하는 헷징 수수료를 청구해놓은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블록체인으로 해결하면 송금 자체를 훨씬 빠르게, 그래서 헷징 수수료도 훨씬 적게 들도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필자가 2016년 초에 실리콘 밸리 일대에서 해외 송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스타트업들을 여러개 봤었는데, 사업 내용이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블록체인을 이용해 여러개의 Entity가 동시에 외환 거래를 보증하는 방식으로 스위프트를 대체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거래를 승인해주고 기록한 주체들이 그 금전거래가 문제가 생길경우 책임을 지는 반대급부로, 수수료를 받는데, 그 수수료가 얼마전까지 광풍을 불어왔던 가상화폐로 지불되는 시스템이다.

 

2. 네트워크 이론

블록체인은 결국 중앙집권적인 SWIFT 시스템 대신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세계 곳곳의 은행들이 거래를 승인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 명의 독재자가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여러명의 책임자들이 공동 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앞의 경우를 Star Network라고 부르고, 뒤의 경우를 Mesh Network라고 부른다.

(Source: Study.com) – 로고에 가려진 네트워크 이름은 “Tree”다.

필자가 논문쓸 때 주로 봤던 네트워크는 작은 나라에서 중앙은행을 기준으로한 은행 시스템을 보여주는 Star Network, 유럽 연합(EU)처럼 여러나라를 넘나들며 사업하는 은행들이 또 서로 엮어있는 Hybrid (또는 Complete)를 기준으로 연구를 했고, 공부하던 당시에 Ring Network를 기준으로 수학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경우, Mesh의 부분 부분만 끊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들에 대한 논문을 봤었다.

블록체인이 구성되려면 Mesh형 네트워크가 일시적, 부분적으로 Star형 네트워크로 전환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바로 맞닿아 있는 Entity가 2, 3개 밖에 없는데, 최소한 5개 이상의 다른 Entity가 거래를 승인해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때는 바로 맞닿아 있지 않지만, 그 거래를 “전해들을” 수 있는 2-step 떨어진 Entity에게 통보를 보내서 5개의 Entity를 맞춰야 한다. 이래도 부족하다면? 3-step, 4-step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수수료를 올려야한다. 이 때 보내는 수수료가 바로 “가상화폐”들이다. 이 때 발생할 수 있는 좀 위험한 경우의 수들을 한번 따져보자.

A. 그렇게 승인을 해줬는데, 거래 오류가 발생해서 거래 쌍방 중 한 쪽이 손해를 봤다면? 당연히 수수료를 받았던 Entity들이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승인해주면서 받았던 “가상화폐”들로.

B. 서버가 다운되어서 거래 내역이 완전히 삭제되었고, 다시 데이터 복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결제할 때 보증해주면서 기록을 남겼던 다른 Entity들이 기록을 공유해줘서 서버 데이터를 복구시킬 수 있다. 당연히 수수료를 줘야 한다.

C. 내 블록에 기록해놨던 다른 Entity들의 기록이 다 지워졌다면? 기록을 복구하고 싶으면 같이 승인에 참가했던 Entity에서 기록을 넘겨받고 수수료를 주거나, 아니면 복구를 포기해야 한다.

여러 Entity들이 C의 상황을 겪은 바람에 A처럼 손해보는 Entity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기록이 남아있는 블록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위에서 승인하는 Entity가 5개라고 했는데, 모든 블록들이 다 데이터 손실이 있을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ex. 바이러스), 거래를 직접 승인한 블록만 그 정보를 저장하는게 아니라, 승인한 블록과 연결되어있는 2차 관계자, 3차 관계자들에게도 같은 정보를 저장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끝으로, 내 블록에서 처리된 거래내역들을 갖고 있었어야 거래 오류로 손해 본 부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니 당연히 B의 경우에도 수수료를 주고 데이터를 복구시키려고 할 것이다.

다들 “가상화폐”나 “코인”이라고하니 무슨 돈 거래인 것처럼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거래 정보를 승인하고 기록하는 탈중앙화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하는 “게임 시스템 머니”라고 보는게 옳다. 물론 그 “코인”이 실물로 전환이 되어야 정말 “머니”가 되는 거겠지만.

 

3. 블록체인 열풍과 머신러닝

어쩌면 “(비트)코인 열풍”이라고 쓰는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몇 달 전엔 “머신러닝이나 딥러닝으로 비트코인 가격 예측할 수 있지 않냐”는 연락도 받아봤고, 요즘 잘 모르는 스타트업들이 너도나도 코인 대열에 끼어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벌써 3개나 봤다.) 다들 ICO한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걸 보는데, 과연 몇 명이나 저런 네트워크 모델을 이해하고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큰 Question mark를 던지고 싶다.

(Source: VentureRadar)

비트코인의 사례에서 봤듯이, 네트워크가 복잡해지면 블록간 결합, 정보 전송, 분리를 유기적으로 빠르게 처리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스템 자원이 필요하다. 당연히 계산 모듈도 좋아야하고, 또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네트워크 모델적인 아이디어와 코드 구성적인 아이디어가 동원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ICO를 하겠다는 스타트업 대표들 중에 필자가 납득할만큼의 수학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아직 못 만나봤다. (심지어 셋 중 한 회사 대표는 고교 정석책 수준의 교양 수학 서적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머신러닝의 Neural network (일반에 딥러닝으로 알려진)를 이미지 인식이나 음성 정보 처리같은데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프로젝트로(copy & paste로) 본 사람들의 눈에 블록체인이 수학의 네트워크 모델이고 Neural network와 접점이 있다는 인식이 쉽게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모든 지식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니까.

(Source: Hopfield network)

Neural network를 one-way로 푸는 방식말고, Hobfield network로 푸는 방식을 본 사람들이라면 블록체인의 네트워크 구성방식이랑 굉장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위에 예시로 든 Hobfield 그림을 보면, Mesh나 Hybrid (or complete) network와 유사한 네트워크라는 걸 알 수 있다. 말을 바꾸면 네트워크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계산의 일부분을 머신러닝의 Neural network로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려면 오른쪽의 Network 그림보다 왼쪽의 행렬식에 집중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결국 Neuron을 잇고 있는 Node들에 들어가는 가중치(Weight)는 행렬의 숫자들로 표현되고, 위의 계산도 필자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듯이 Network 계산은 행렬 계산이 되어버린다. 고교 수학에 나오듯이, 행렬은 중학교 때 배운 방정식 계산을 위한 도구라는 점을 기억해보면, 결국 블록체인 모델링의 기초를 우리네 중, 고교 수학에서 다 배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네트워크 이론을 몰라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ㅎㅎ)

어차피 Neural net 기반의 머신러닝 모델이건 Hobfield net 기반의 블록체인이건 실제로 적용하는 작업에 필요한 계산은 최적화(Optimization)다. 이걸 개발자 스타일로 “새로 나온거야? 어떻게 쓰는거야?”라고 물으면서 Copy & Paste를 하는게 맞을까, 아니면 기본적인 수학 개념들을 이해해서 두 개의 기술 모델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게 좋을까?

 

나가며

가상화폐라는 것은 블록체인 시스템이 돌아가도록하는 도구이지, 그 자체로 화폐를 대체하는 수단이 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화폐의 가치는 보증해 주는 기관의 신뢰도에 달려있는데, 탈중앙집권적인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생성방식에서 이미 보증기관을 배제하고 시작한다. 결국 특정 시스템 내부적으로만 인정받는 화폐가 될 것이고, 그 가치는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의 여부와 실물 화폐로 연동되는 창구에서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본다.

요즘 몇몇 회사들이 진행하는 ICO는 아예 한 발 더 나가서 그냥 코인 찍어내고 돈을 받는, 봉이 김선달 식의 판매같은 느낌도 든다. 주식이라면 회사 소유권을 갖게되는거지만, ICO로 받은 코인은 그 코인이 다른 실물화폐와 일정 비율의 교환 가치를 가질 때만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물론 아무도 그 교환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돈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비트 코인처럼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기대”가 있기 떄문일 것이다. 정말 “기대”대로 가격이 폭등할까?

(Source: B’ZUP) – 테라노스의 급성장도 실제 기술에는 관심없고, 투자금액(과 CEO의 미모?)에만 열광했던 비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투기판이었다

“코인”한다는 사업모델을 찾고 있는 투자자들, 코인에 일찍 투자해서 큰 돈을 벌고 싶은 ICO 매니악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실물 화폐가 유의미한 이유는 경제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하는 윤활유이기 때문이다. 짐바브웨나 아르헨티나처럼 정부가 외환 부채 갚겠다고 돈을 막 찍어내면 초 인플레로 경제 시스템이 망가지고, 국민들이 그 나라 화폐 대신 달러, 유로, 엔 같은 안정적인 가치의 대체 화폐를 찾는다. 가상화폐들의 운명도 그 가상화폐를 사용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에 달려있지, “광풍”에 달려있지는 않다.

사업 모델이 구체적으로 갖춰지지 않은 회사가 찍어낸 ICO를 구매해놓고 “대박”이 나기를 기대하는건,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화려한 용어만 가득 들어간 백서(White Paper) 하나 만들고 ICO하겠다는 회사들 중에 그 백서의 내용을 구현하기는 커녕 제대로 이해하는 회사는 과연 몇 개나 될까?

“광풍”을 몰고 온 메뚜기 떼가 지나간 벌판은 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는 폐허가 된다.

 

 

이전 글: 데이터 사이언스와 비트코인

필자의 박사 논문은 은행 네트워크에 외부 충격이 와서 1 or 2개 은행이 그 직격탄을 맞고 (예시. 2008년 Bear Sterns와 Lehman Brothers), 그 때 파산하는 은행과 직접 금융거래로 묶여 있던 다른 은행들이 그 충격을 어떻게 흡수하고, 은행 네트워크 속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다른 제3, 제4의 은행들이 그 충격을 어떻게 피할까, 그런 위험을 계산식에 넣으면 기존의 은행 가치 평가 기준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번 포스팅 기준으로 윗 요약글의 핵심 단어는 “은행 네트워크, 직접, 간접, 충격 흡수, 위험을 계산식에 넣으면” 이라는 단어다.

(Source: meme)

지난 몇 달간 “비트코인 대박, 쪽박”이 언론에 오르내린 덕분인지 블록체인이 새로운 Buzzword로 부상하면서, 갑자기 “코인”이라는 단어가 안 들어가면 스타트업 펀딩을 못 받는다는 둥, “코인”을 모르면 스타트업계 사람이 아니라는 둥의 또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ICO*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고, 저렴할 때 미리 사놓고 나중에 비트코인처럼 대박나면 돈 벌어라는 식으로들 필자를 “꼬시는” 사람도 생겼다.

*ICO: 주식공개 (IPO)의 가상화폐 버전, 코인 거래 시장에 신규 상장하는 코인을 말한다.

뭔가 여의도 증권사에서 세일즈하는 사람들이 IPO하는 주식 물량을 다 소화해야되니 돈 있는 사람들 쫓아다니며 얼마씩 투자하면 나중에 큰 돈 된다고 “썰”을 푸는 것 같은 느낌이 좀 많이 든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저런 식의 세일즈 하는 사람들 중에 가상화폐의 핵심인 블록체인이 무슨 기술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 블록체인의 시초 – 외환 송금

블록체인을 좀 (많이) 간단하게 설명하면,

A. 둘이 서로 거래하고,

B.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C. 그 거래를 다른 사람들이 다 승인하고,

D. 승인 내용을 다른 사람들 블록 안에 기록하고,

E. 승인하고 기록한 블록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는 시스템

F. 수수료를 “가상화폐”로 지불

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Source: SpotCrime)

제일 먼저 이 시스템을 이용하려고 했던 서비스는 외환 송금이었다. 국가 A에서 국가 B로 송금하려고 할 때, 화폐가 다르기 때문에 환전을 해야하는데, 환율은 국가 A의 외환 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 B의 외환시장에서도 독립적으로 결정된다. 문제는 국가 A의 은행a가 국가 B의 은행b로 송금할 때, 각 국별로 외환 담당하는 은행을 우선 거쳐야하고 (한국은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국가별 중앙은행을 거쳐야하고 (대량 외환 유출로 IMF 구제금융 시즌 2가 일어나는걸 한국은행이 가만히 둘리가…), 또 국제 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 (SWIFT)를 이용한다. 스위프트는 국제적인 은행연합체(BIS)에 의해서 관리된다. 이게 40년 전에 구축된 시스템인데, 해외 송금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시간도 하루, 이틀 걸리고, 은행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많이 저렴해지긴 했지만…)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보니 은행들은 가격 변동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항상 금융시장에서 헷징 (Hedging)을 한다. 환율이 변동된 부분만큼 보상을 받거나, 차익을 지불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에서 해외직구로 카드 결제를 하고나면, 월말 카드 명세서에 총 거래 금액의 0.2% ~ 0.35% 정도에 해당하는 헷징 수수료를 청구해놓은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블록체인으로 해결하면 송금 자체를 훨씬 빠르게, 그래서 헷징 수수료도 훨씬 적게 들도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필자가 2016년 초에 실리콘 밸리 일대에서 해외 송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스타트업들을 여러개 봤었는데, 사업 내용이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블록체인을 이용해 여러개의 Entity가 동시에 외환 거래를 보증하는 방식으로 스위프트를 대체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거래를 승인해주고 기록한 주체들이 그 금전거래가 문제가 생길경우 책임을 지는 반대급부로, 수수료를 받는데, 그 수수료가 얼마전까지 광풍을 불어왔던 가상화폐로 지불되는 시스템이다.

 

2. 네트워크 이론

블록체인은 결국 중앙집권적인 SWIFT 시스템 대신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세계 곳곳의 은행들이 거래를 승인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 명의 독재자가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여러명의 책임자들이 공동 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앞의 경우를 Star Network라고 부르고, 뒤의 경우를 Mesh Network라고 부른다.

(Source: Study.com) – 로고에 가려진 네트워크 이름은 “Tree”다.

필자가 논문쓸 때 주로 봤던 네트워크는 작은 나라에서 중앙은행을 기준으로한 은행 시스템을 보여주는 Star Network, 유럽 연합(EU)처럼 여러나라를 넘나들며 사업하는 은행들이 또 서로 엮어있는 Hybrid (또는 Complete)를 기준으로 연구를 했고, 공부하던 당시에 Ring Network를 기준으로 수학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경우, Mesh의 부분 부분만 끊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들에 대한 논문을 봤었다.

블록체인이 구성되려면 Mesh형 네트워크가 일시적, 부분적으로 Star형 네트워크로 전환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바로 맞닿아 있는 Entity가 2, 3개 밖에 없는데, 최소한 5개 이상의 다른 Entity가 거래를 승인해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때는 바로 맞닿아 있지 않지만, 그 거래를 “전해들을” 수 있는 2-step 떨어진 Entity에게 통보를 보내서 5개의 Entity를 맞춰야 한다. 이래도 부족하다면? 3-step, 4-step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수수료를 올려야한다. 이 때 보내는 수수료가 바로 “가상화폐”들이다. 이 때 발생할 수 있는 좀 위험한 경우의 수들을 한번 따져보자.

A. 그렇게 승인을 해줬는데, 거래 오류가 발생해서 거래 쌍방 중 한 쪽이 손해를 봤다면? 당연히 수수료를 받았던 Entity들이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승인해주면서 받았던 “가상화폐”들로.

B. 서버가 다운되어서 거래 내역이 완전히 삭제되었고, 다시 데이터 복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결제할 때 보증해주면서 기록을 남겼던 다른 Entity들이 기록을 공유해줘서 서버 데이터를 복구시킬 수 있다. 당연히 수수료를 줘야 한다.

C. 내 블록에 기록해놨던 다른 Entity들의 기록이 다 지워졌다면? 기록을 복구하고 싶으면 같이 승인에 참가했던 Entity에서 기록을 넘겨받고 수수료를 주거나, 아니면 복구를 포기해야 한다.

여러 Entity들이 C의 상황을 겪은 바람에 A처럼 손해보는 Entity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기록이 남아있는 블록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위에서 승인하는 Entity가 5개라고 했는데, 모든 블록들이 다 데이터 손실이 있을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ex. 바이러스), 거래를 직접 승인한 블록만 그 정보를 저장하는게 아니라, 승인한 블록과 연결되어있는 2차 관계자, 3차 관계자들에게도 같은 정보를 저장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끝으로, 내 블록에서 처리된 거래내역들을 갖고 있었어야 거래 오류로 손해 본 부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니 당연히 B의 경우에도 수수료를 주고 데이터를 복구시키려고 할 것이다.

다들 “가상화폐”나 “코인”이라고하니 무슨 돈 거래인 것처럼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거래 정보를 승인하고 기록하는 탈중앙화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하는 “게임 시스템 머니”라고 보는게 옳다. 물론 그 “코인”이 실물로 전환이 되어야 정말 “머니”가 되는 거겠지만.

 

3. 블록체인 열풍과 머신러닝

어쩌면 “(비트)코인 열풍”이라고 쓰는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몇 달 전엔 “머신러닝이나 딥러닝으로 비트코인 가격 예측할 수 있지 않냐”는 연락도 받아봤고, 요즘 잘 모르는 스타트업들이 너도나도 코인 대열에 끼어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벌써 3개나 봤다.) 다들 ICO한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걸 보는데, 과연 몇 명이나 저런 네트워크 모델을 이해하고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큰 Question mark를 던지고 싶다.

(Source: VentureRadar)

비트코인의 사례에서 봤듯이, 네트워크가 복잡해지면 블록간 결합, 정보 전송, 분리를 유기적으로 빠르게 처리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스템 자원이 필요하다. 당연히 계산 모듈도 좋아야하고, 또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네트워크 모델적인 아이디어와 코드 구성적인 아이디어가 동원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ICO를 하겠다는 스타트업 대표들 중에 필자가 납득할만큼의 수학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아직 못 만나봤다. (심지어 셋 중 한 회사 대표는 고교 정석책 수준의 교양 수학 서적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머신러닝의 Neural network (일반에 딥러닝으로 알려진)를 이미지 인식이나 음성 정보 처리같은데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프로젝트로(copy & paste로) 본 사람들의 눈에 블록체인이 수학의 네트워크 모델이고 Neural network와 접점이 있다는 인식이 쉽게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모든 지식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니까.

(Source: Hopfield network)

Neural network를 one-way로 푸는 방식말고, Hobfield network로 푸는 방식을 본 사람들이라면 블록체인의 네트워크 구성방식이랑 굉장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위에 예시로 든 Hobfield 그림을 보면, Mesh나 Hybrid (or complete) network와 유사한 네트워크라는 걸 알 수 있다. 말을 바꾸면 네트워크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계산의 일부분을 머신러닝의 Neural network로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려면 오른쪽의 Network 그림보다 왼쪽의 행렬식에 집중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결국 Neuron을 잇고 있는 Node들에 들어가는 가중치(Weight)는 행렬의 숫자들로 표현되고, 위의 계산도 필자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듯이 Network 계산은 행렬 계산이 되어버린다. 고교 수학에 나오듯이, 행렬은 중학교 때 배운 방정식 계산을 위한 도구라는 점을 기억해보면, 결국 블록체인 모델링의 기초를 우리네 중, 고교 수학에서 다 배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네트워크 이론을 몰라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ㅎㅎ)

어차피 Neural net 기반의 머신러닝 모델이건 Hobfield net 기반의 블록체인이건 실제로 적용하는 작업에 필요한 계산은 최적화(Optimization)다. 이걸 개발자 스타일로 “새로 나온거야? 어떻게 쓰는거야?”라고 물으면서 Copy & Paste를 하는게 맞을까, 아니면 기본적인 수학 개념들을 이해해서 두 개의 기술 모델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게 좋을까?

 

나가며

가상화폐라는 것은 블록체인 시스템이 돌아가도록하는 도구이지, 그 자체로 화폐를 대체하는 수단이 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화폐의 가치는 보증해 주는 기관의 신뢰도에 달려있는데, 탈중앙집권적인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생성방식에서 이미 보증기관을 배제하고 시작한다. 결국 특정 시스템 내부적으로만 인정받는 화폐가 될 것이고, 그 가치는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의 여부와 실물 화폐로 연동되는 창구에서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본다.

요즘 몇몇 회사들이 진행하는 ICO는 아예 한 발 더 나가서 그냥 코인 찍어내고 돈을 받는, 봉이 김선달 식의 판매같은 느낌도 든다. 주식이라면 회사 소유권을 갖게되는거지만, ICO로 받은 코인은 그 코인이 다른 실물화폐와 일정 비율의 교환 가치를 가질 때만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물론 아무도 그 교환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돈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비트 코인처럼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기대”가 있기 떄문일 것이다. 정말 “기대”대로 가격이 폭등할까?

(Source: B’ZUP) – 테라노스의 급성장도 실제 기술에는 관심없고, 투자금액(과 CEO의 미모?)에만 열광했던 비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투기판이었다

“코인”한다는 사업모델을 찾고 있는 투자자들, 코인에 일찍 투자해서 큰 돈을 벌고 싶은 ICO 매니악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실물 화폐가 유의미한 이유는 경제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하는 윤활유이기 때문이다. 짐바브웨나 아르헨티나처럼 정부가 외환 부채 갚겠다고 돈을 막 찍어내면 초 인플레로 경제 시스템이 망가지고, 국민들이 그 나라 화폐 대신 달러, 유로, 엔 같은 안정적인 가치의 대체 화폐를 찾는다. 가상화폐들의 운명도 그 가상화폐를 사용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에 달려있지, “광풍”에 달려있지는 않다.

사업 모델이 구체적으로 갖춰지지 않은 회사가 찍어낸 ICO를 구매해놓고 “대박”이 나기를 기대하는건,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화려한 용어만 가득 들어간 백서(White Paper) 하나 만들고 ICO하겠다는 회사들 중에 그 백서의 내용을 구현하기는 커녕 제대로 이해하는 회사는 과연 몇 개나 될까?

“광풍”을 몰고 온 메뚜기 떼가 지나간 벌판은 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는 폐허가 된다.

 

블록체인 시리즈

몇 달 전에 뜬금없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중략)

Q: 요즘 새로 나온 딥러닝이라는 알고리즘을 금융데이터에도 적용할 수 있나요?

A: (어휴.. 또 시작했네) 딥러닝을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Q: 그 뭐… 알파고에도 쓰고,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 아닌가요?

A: (최소한 당신보다는 더 뛰어난 것 같습…) 무슨 금융데이터에 적용하실려구요?

Q: 아니… 이런거 적용해서 돈 벌어야죠.

A: 금융상품의 가격은 파이낸스 모델로 계산합니다. 딥러닝이 거기에 왜 필요하죠?

Q: 주식에도 적용한다던데, 요새 비트코인도 뜨고….

A: 죄송합니다만, 전화 끊겠습니다.

Q: 아아~ 그런게 아니라, 이런걸로 용역을 하나 발주해볼까 하는데…

A: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 바로 끊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전화를 지난 몇 달 동안 대략 10통 정도 받은 것 같다. 보통은 딥러닝 어쩌고 그러면 그냥 죄송하다고 끊고, 용역 어쩌고 그러면 정말 죄송하다고 긴 말없이 바로 끊는다. 저런식으로 딥러닝이라는 단어에 대한 환상에 빠진 사람들에게 뭔 설명을 해준들 알아먹을리가 없다는 것도 벌써 몇 년째 보고 있기도 하고, 전화기 붙잡고 가르쳐 줄 시간도 없다. 최소한 필자의 블로그 글 몇 편이라도 읽어봤으면 무턱대고 저런 전화를 안 걸텐데, 대화의 거의 첫 머리부터 저런 말이 나왔다는 건 블로그 글을 안 읽었거나,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증거겠지. 글을 읽어보지도 않는 무례한 사람들이나,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는 사람들에게 왜 필자가 시간을 써야하나?

필자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말한대로, 딥러닝이라고 불리는 모델은 그냥 신경망 모델이 좀 복잡해진 것에 불과하고, 신경망 모델은 기본적인 회귀분석 모델을 중첩한 것에 불과하다. 데이터가 랜덤인데도 불구하고 랜덤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마술이 아니라, 단순히 찾기 어려운 패턴을 찾아주는 여러가지 모델링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돈 벌려고 이런 “용역”을 넙죽 받은 사람이 있을지도…)

저렇게 딥러닝이라는 단어에 현혹될 수준으로 밖에 모르는 아주 사고의 수준이 얕은 사람들이 1-2년 전만해도 주식시장에 적용하면 “MBA 나온 펀드 매니저”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는 “로보 어드바이저”를 만들 수 있다고 헛소리를 읊어대더니, 요즘엔 또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비트코인도 딥러닝을 적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 같다. (MBA에서 2년간 파티하고 골프치고나면 갑자기 투자를 더 잘하게 된다는 그 어이털리는 논리는 나중에 이야기하자…하아…)

 

안 되니까 안 된다고 하는거지

장기간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던 무렵, 막 사업하겠다는 학부시절 친구 하나를 만나게 됐다.

Q: 야, 그 알파고에 썼다는 딥러닝이라는거, 그거 주식 가격 예측하는데도 쓸 수 있지 않아?

A: 어차피 다 통계 모델들이니까 어디든 다 쓸 수야 있겠지. 포인트는 주식 가격 예측하는데 무슨 데이터 쓰느냐 아니겠냐.

Q: 그 여의도에 가면 기술적 분석 하는 사람들 있잖아, 이동평균선 같은거 보고, 물량 같은거 보고…

A: (손을 가로 저으며) 과거 데이터로 미래 데이터 예측하겠다는거네? 그럴려면 주가에 랜덤 Noise가 별로 없어야 되는데, 정작 주가 수익률은 정규 분포야. 빼박 랜덤이라는 이야기지. 다른 데이터 쓰겠다면 몰라도, 그건 안 될꺼 같다. 운 좋게 한 두번은 맞을지 몰라도.

Q: 아니, 그럼 알파고는 어떻게 이세돌을 4번이나 이겼냐?

A: 그거야 바둑 데이터가 랜덤이 아니라, 포석이라는게 있고, 이길려면 나름대로 전략이 있고 그러니까, 그 데이터들을 일정한 패턴으로 인식한 다음에, 패턴 중에 제일 좋은 결과값 주는 걸 계산했겠지. 게임이론 할 때처럼 마지막 stage부터 거꾸로 역산하면 현 시점의 승률 같은거 예측할 수 있잖아.

Q: 그게 주가 예측에는 안 되냐?

A: 주가 수익률은 정규분포고, 정규분포는 랜덤아니냐. 너 학부 때 계량(경제학) 안 들었냐?

Q: 아니, 경제통계만 들었어. 딥러닝이랑 계량이랑 무슨 상관있는데?

A: 너 어디가서 우리학교 경제과 출신이라고 하지마라. 쪽팔린다 임마. 둘 다 회귀분석 기반으로한 통계학이야.

Q: 딥러닝은 공학 알고리즘 아냐? 그게 왜 통계학이야?

A: 너 아까부터 느끼는건데, 우리과 공부한 애들이 보여주는 생각의 깊이가 안 보인다. 공대같이 말하네. 딥러닝은 신경망 모델이 다층으로 결합된거고, 신경망 모델은 우리가 학부 때 계량경제학에서 배우는 회귀분석 모델을 여러 개 중첩한거야. y=ax+b 같은 선형방정식으로 표현 못하는 비선형함수를 좀 쉽게 찾아내보려고 하는 일종의 non-parametric 모델이지.

Q: 그렇게 어렵게 말할거 없이, 이세돌을 이길 수 있는 인공지능이 왜 주가 예측에는 적용이 안 된다는거야?

A: 인공지능이라는 것도 결국 패턴찾는 통계 모델이고, 통계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데이터에 패턴이 숨어있어야지. 랜덤인데 어떻게 패턴을 찾냐? 스타(크래프트) 랜덤 종족 고르면 뭐 나올지 어캐 아냐? 아까 저그였으면 이번엔 저그 안 나오냐? 독립사건 몰라?

Q: 그럼 못 하는거야?

A: 과거 주가로 미래 주가 예측하는거 말고, 다른 데이터 찾아봐. 분기 보고서 공시되기 전에 영업 데이터 미리 알 수 있으면 돈 벌겠지. 월가가면 대형마트 주차장 사진 찍어서 매출액 미리 예측하더라.

(채만식의 『치숙(痴叔)』이 생각나는 대화였다. 이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부 동기랑…)

요즘 로보 어드바이저 사업을 하는 회사들 가보면, 위에서 말한 방식의 단순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로보 어드바이져로 이름만 바꿔 붙여놓은 경우가 많다. 그 중 저런 기술적 분석 기반 모델 아이디어가 가장 잘 반영된 적극 투자형 펀드의 수익률은 링크링크의 기사를 참조하시라. 비트코인이라고 해서 다를게 있나? 어차피 과거 데이터로 그 데이터에서 패턴 찾아서 그대로 미래에도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으로 모델 만든다면 비트코인도 다를 바 없다. 근데, 차라리 그냥 주식의 수급만 보고 돈 투자하는게 낫지, 비트코인에는 더 심한 문제가 숨어있다.

 

비트코인 광풍

(Issac Newton, 수학, 우주물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천재지만 정작 South Sea 버블에 전재산을 날린…)

비트코인 광풍이 지난 몇 달간 몰아치는 걸 보면서, 박사 재학 시절 갔던 어느 학회에서 거시경제학 논문 발표하던 분이 내린 “자산 가격 버블의 정의”가 문뜩 떠올랐다. 정상 교육과정으로 자산 가격에 대한 공부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공감하겠지만, “합리적”인 자산의 가격은 그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현금흐름의 총합이다. 제일 쉽게 채권을 생각하면, 매년 만원씩 주는 채권이 있고, 이자율이 5%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 채권의 최대가치는 20만원이다. (그 채권의 만기가 무한대라고 가정하면)

그 논문에서 자산 버블을 모델링할 때 미래 현금 흐름과 같은 Fundamental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 자산의 (투기) 수요과 공급으로 가격이 들쭉날쭉한 부분을 버블로 잡아놨더라. 수요가 계속 몰리는데 공급량은 정해져 있으니 가격이 폭등하다가, 더 이상 투입될 돈이 없어지는 시점이 오면 그 가격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결국은 가격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원래 Fundamental로 정해진 가격이 아니라, 투기 수요로 유지된 가격이었으니 가격 하락은 더 큰 하락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수요/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있으면 (엄밀하게 말하면 공급 증가는 미미하니 사실상 수요 중심의 가격 결정), 수요가 어떻게 유입되는지로 가격 예측을 할 수 있을텐데, 광풍의 수요 움직임을 어떻게 예측할까? 합리적인 가치를 계산해서 자산을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하는걸 “투자”라고 하고, 수요가 몰리는 걸 보고 따라서 움직이는 양떼식 (Herding behavior) 돈 쏠림을 “과열”이라고 부른다. 과열된 시장을 영어 표현으로 “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설명이 안 된다는 뜻이다. 설명이 안 되는 수요 광풍을 도대체 어떤 모델로 어떻게 복제해 낼 수 있을까?

딥러닝은 다른거 아니냐고? 수요 광풍이건 뭐건 다 찾아낼 수 있는거 아니냐고? 저 위에 썼듯이, 딥러닝은 신경망 모델을 좀 무겁게 만든거고, 신경망 모델은 회귀분석 모델을 여러개 겹친거다. 그리고 회귀분석 모델들은 패턴없는 무작위 랜덤 데이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Issac Newton이 했던 말을 살짝 바꿔서 쓰면,

“Deep Learning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

 

가상화폐의 본질적 가치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본질적 가치는 크게 두 가지다. 블록체인을 위시한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매개체, 그리고 어쨌든 “화폐”니까 교환가치. 후자인 교환가치는 각국 정부들이 현재 운용하고 있는 자국의 화폐와 교환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해줘야하는데,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 쓰는 식의 큰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경제 사이즈가 큰 나라들 몇 개에서 승인을 해줘야 한다. 이럴려면 가장 결정적인 요건이 그 화폐 가치의 안정성인데 (잘못하다가는 국부가 다 빠져나갈수도 있으니까), 매일 초단위로 가격이 날뛰는 자산에, 언제 거래소가 문 닫을지 모르고, 또 아무런 컨트롤 타워도 없는 화폐에 어느 정부가 교환 가치를 인정해줄까? 그런 정부가 있다면 국민들이 “무능”을 이유로 당장 “탄핵”해야한다. 멋 모르고 승인해줘놓고 조지 소로스 같은 헤지 펀드 장난꾼들한테 공격 당해서 가격 대폭등/대폭락 몇 번 겪고, 국부 왕창 유출되고, 환율 폭등하고, 그렇게 허덕이다가 IMF 구제금융 맞아봐야 정신차릴까?

결국 가상화폐의 핵심적인 가치는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저비용, 고효율로 유지시켜줄 수 있는 블록체인의 가치 밖에 없다. 국내 전자상거래는 일단 제쳐놓고, 국외 거래만 놓고보면, 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에서 전세계 외환거래 내역을 보면 알겠지만, 그 금액이 크고, 또 나라별 시차 때문에 생기는 변동성 때문에 수수료가 꽤나 큰 시장이다. 예전에 국제 송금을 최단시간에 할 수 있다는 회사들의 수수료를 보면 거래 금액의 10%를 넘는 큰 금액이었는데, 요즘 블록체인 기반의 여러 스타트업들이 변동성 위험을 스스로 떠 안는 방식으로 수수료를 내재화하면서 0.1% 미만의 아주 낮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마 이런 경쟁이 한 동안 지속되고 나면 언젠가는 전형적인 Bertrand competition 시장(최저가 가격 경쟁 시장)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환기간 동안에는 기술력 있는 회사들이 지대(Rent, 초과이윤에 대한 경제학 개념)를 챙겨먹는 시장이 한동안 형성되겠지.

말을 바꾸면, 세계 화폐 시장이 “통일 -> 분리”되면 될수록 당장은 가상화폐의 가치가 증가하는게 상식적이다. 그런데 브렉시트(Brexit)할 때 가상화폐들 가격이 폭등했나? 전세계 2위 화폐인 유로에서 전세계 5위 화폐인 파운드화가 떨어져 나가고, 런던 금융 시장이 외환거래만큼은 전세계 최대 시장인데, 저렇게 외환 거래 수수료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거기에 쓰일 핵심 기술의 가치는 맞춰서 증가했나? 브렉시트 발표와는 관계없이 비트코인은 매일같이 단순한 널뛰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시장이 가상화폐의 블록체인 시장 내 가치를 그렇게 대단하게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 (물론 비트코인같은 초창기 가상화폐가 아니라, 더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낸 가상화폐는 또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놓는다.)

 

서민의 꿈? 한탕의 꿈!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비트코인에 “물렸다”며 울상이더라. 정부가 신규 유입을 막는 식의 “사회주의” 정책을 펼쳐서 “서민의 꿈”을 짓밟는다는 역성을 내던데, 밥먹다 체할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지만, 보시라고 한 두마디 달아본다.

신규 유입을 막는다고 가격이 폭락하는 자산은 수요/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움직이는 자산이니, 저 위의 정의에 따르면 “버블”이 낀 자산이다. 단적으로 부동산 거래에 세금 폭탄을 때려놓으면 다른 투기 과열지역 (ex. 세종시) 아파트 가격은 떨어져도 서울 강남의 집 값은 어지간해서는 안 떨어진다. 대한민국 부촌의 상징이라는 내재가치가 그 가격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신규 유입을 막는 정부 정책은 이미 물린 사람들은 빨리 팔고 나오고, 안 물린 사람들은 더 이상 피해보지 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정책이다. 더 빨리 이런 액션이 취해졌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아마도 정부라는 조직이 뭐 하나 결정하는데 느려터진 조직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으리라 짐작한다. “서민의 꿈”이라는 단어는 아마 “한탕의 꿈”라는 단어로 바꿔야될 것 같고, 버블이라는 걸 알면서도 뛰어든 자신의 주체못하는 욕망을 탓해야하지 않을까? 그게 버블이라는 것도 몰랐다면, 그 정도 지식 수준으로 투자(Read 투기)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지. 가만히 놔뒀으면 “서민의 꿈”을 부르짖던 당신들 자신이 IMF 구제금융 Ver. 2를 일으킬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지난 몇 달동안 비트코인 가격 폭등을 대부분 한국의 몇몇 젊은이들이 이끌었다는 외국 언론의 보도에 비춰볼 때, 외국인이 소유했다가 고가로 팔린 비트코인들을 한국인들이 매수했고, 이걸 더 비싼 가격에 못 판다면 결국엔 한국인들이 그 손실을 떠 안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이 상품의 내재가치가 없고 수요/공급으로만 가격 상승이 이뤄졌다면 언젠가는 버블이 터지지 않을까? 그 때 그 손실은 누가 떠 안아야 할까? 차라리 지금 약간 손실보는게 국가적으로는 덜 손해가 아닐까? 한국인들이 더 이상 시장에 진입하지않고 이탈자가 늘어나면 비트코인 가격은 광풍 이전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다. 수요/공급으로 움직이는 시장이니 수요가 빠지면 당연히 가격이 빠지겠지.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장에 개입하는 정부가 어딨냐는 X소리는 또 뭐냐… 자본 시장 규제 안 하는 국가 없고, 한국 같은 나라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까봐 여러가지 방어막이 잔뜩 갖춰진 나라다. 버블이 터지면 책임은 누가지는데? “서민의 꿈”을 외치는 당신들이 그 버블의 후폭풍을 다 책임질 수 있나?

필자가 정부에 불만이 한 가지 있다면, 이걸 왜 이렇게 늦게 규제했는지에 대한 아쉬움 정도 밖에 없다. 나라가 크고 시장이 이런 금융 버블 충격을 잘 흡수할 수 있으면 큰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나라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버블 하나 터지면 국민 경제에 치명상을 입는다. 더 늦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완전 거래 정지가 아니라 단계적인 절차를 밟을만큼 시장 충격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 한국 정부가 1997년이나 2007년 대비 훨씬 더 버블에 대처하는 경험치가 쌓인 티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뿐이다.

몇 년 지나고 나면, 1997년에는 아시아에서 국가 단위로 단기채에 과잉 의존하는 도박을 했고, 2007년에는 미국 월가 대형은행 단위로 서브 프라임이라는 상품을 발행하면서 도박을 했고, 2017년에는 한국의 개미 투자자 단위로 비트코인이라는 실체없고 기술력 낮은 가상 화폐에 돈을 붓는 도박을 했다는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레 생긴 버블이 터지면 나라가 몇 년 동안 겨우겨우 끌어올린 GDP가 한번에 몇 %씩 빠져나간다. 그 손실을 결국에는 국가가 다 떠 안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Lender of last resort (최후 대부자)라고 부르고, 그 손실을 국가가 다 못 떠 안으면 그 나라는 IMF 같은 기관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한다. 1997년에 봤듯이 매우매우 굴욕적인 조건으로. 캐나다의 속지가 되어버린 Newfoundland처럼 극단적으로는 나라가 망하고 다른 나라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몇 년쯤 지나면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버블의 예시로 네덜란드 튤립 대신 한국 젊은이들의 비트코인 광풍이 나올 것 같다. LSE에서 공부하던 시절 만난 네덜란드 친구가 자기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휩쓸려다니는 바보인지 너무 잘 보여주는 사례인거 같아서 쪽팔리다던데, 몇 년 후에 필자가 외국인 친구만나면 그런 이야길 해야될 판국이다ㅠㅠ 속이 쓰리다.

후속글: 머신러닝과 블록체인

몇 달 전에 뜬금없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중략)

Q: 요즘 새로 나온 딥러닝이라는 알고리즘을 금융데이터에도 적용할 수 있나요?

A: (어휴.. 또 시작했네) 딥러닝을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Q: 그 뭐… 알파고에도 쓰고,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 아닌가요?

A: (최소한 당신보다는 더 뛰어난 것 같습…) 무슨 금융데이터에 적용하실려구요?

Q: 아니… 이런거 적용해서 돈 벌어야죠.

A: 금융상품의 가격은 파이낸스 모델로 계산합니다. 딥러닝이 거기에 왜 필요하죠?

Q: 주식에도 적용한다던데, 요새 비트코인도 뜨고….

A: 죄송합니다만, 전화 끊겠습니다.

Q: 아아~ 그런게 아니라, 이런걸로 용역을 하나 발주해볼까 하는데…

A: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 바로 끊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전화를 지난 몇 달 동안 대략 10통 정도 받은 것 같다. 보통은 딥러닝 어쩌고 그러면 그냥 죄송하다고 끊고, 용역 어쩌고 그러면 정말 죄송하다고 긴 말없이 바로 끊는다. 저런식으로 딥러닝이라는 단어에 대한 환상에 빠진 사람들에게 뭔 설명을 해준들 알아먹을리가 없다는 것도 벌써 몇 년째 보고 있기도 하고, 전화기 붙잡고 가르쳐 줄 시간도 없다. 최소한 필자의 블로그 글 몇 편이라도 읽어봤으면 무턱대고 저런 전화를 안 걸텐데, 대화의 거의 첫 머리부터 저런 말이 나왔다는 건 블로그 글을 안 읽었거나,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증거겠지. 글을 읽어보지도 않는 무례한 사람들이나,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는 사람들에게 왜 필자가 시간을 써야하나?

필자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말한대로, 딥러닝이라고 불리는 모델은 그냥 신경망 모델이 좀 복잡해진 것에 불과하고, 신경망 모델은 기본적인 회귀분석 모델을 중첩한 것에 불과하다. 데이터가 랜덤인데도 불구하고 랜덤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마술이 아니라, 단순히 찾기 어려운 패턴을 찾아주는 여러가지 모델링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돈 벌려고 이런 “용역”을 넙죽 받은 사람이 있을지도…)

저렇게 딥러닝이라는 단어에 현혹될 수준으로 밖에 모르는 아주 사고의 수준이 얕은 사람들이 1-2년 전만해도 주식시장에 적용하면 “MBA 나온 펀드 매니저”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는 “로보 어드바이저”를 만들 수 있다고 헛소리를 읊어대더니, 요즘엔 또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비트코인도 딥러닝을 적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 같다. (MBA에서 2년간 파티하고 골프치고나면 갑자기 투자를 더 잘하게 된다는 그 어이털리는 논리는 나중에 이야기하자…하아…)

 

안 되니까 안 된다고 하는거지

장기간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던 무렵, 막 사업하겠다는 학부시절 친구 하나를 만나게 됐다.

Q: 야, 그 알파고에 썼다는 딥러닝이라는거, 그거 주식 가격 예측하는데도 쓸 수 있지 않아?

A: 어차피 다 통계 모델들이니까 어디든 다 쓸 수야 있겠지. 포인트는 주식 가격 예측하는데 무슨 데이터 쓰느냐 아니겠냐.

Q: 그 여의도에 가면 기술적 분석 하는 사람들 있잖아, 이동평균선 같은거 보고, 물량 같은거 보고…

A: (손을 가로 저으며) 과거 데이터로 미래 데이터 예측하겠다는거네? 그럴려면 주가에 랜덤 Noise가 별로 없어야 되는데, 정작 주가 수익률은 정규 분포야. 빼박 랜덤이라는 이야기지. 다른 데이터 쓰겠다면 몰라도, 그건 안 될꺼 같다. 운 좋게 한 두번은 맞을지 몰라도.

Q: 아니, 그럼 알파고는 어떻게 이세돌을 4번이나 이겼냐?

A: 그거야 바둑 데이터가 랜덤이 아니라, 포석이라는게 있고, 이길려면 나름대로 전략이 있고 그러니까, 그 데이터들을 일정한 패턴으로 인식한 다음에, 패턴 중에 제일 좋은 결과값 주는 걸 계산했겠지. 게임이론 할 때처럼 마지막 stage부터 거꾸로 역산하면 현 시점의 승률 같은거 예측할 수 있잖아.

Q: 그게 주가 예측에는 안 되냐?

A: 주가 수익률은 정규분포고, 정규분포는 랜덤아니냐. 너 학부 때 계량(경제학) 안 들었냐?

Q: 아니, 경제통계만 들었어. 딥러닝이랑 계량이랑 무슨 상관있는데?

A: 너 어디가서 우리학교 경제과 출신이라고 하지마라. 쪽팔린다 임마. 둘 다 회귀분석 기반으로한 통계학이야.

Q: 딥러닝은 공학 알고리즘 아냐? 그게 왜 통계학이야?

A: 너 아까부터 느끼는건데, 우리과 공부한 애들이 보여주는 생각의 깊이가 안 보인다. 공대같이 말하네. 딥러닝은 신경망 모델이 다층으로 결합된거고, 신경망 모델은 우리가 학부 때 계량경제학에서 배우는 회귀분석 모델을 여러 개 중첩한거야. y=ax+b 같은 선형방정식으로 표현 못하는 비선형함수를 좀 쉽게 찾아내보려고 하는 일종의 non-parametric 모델이지.

Q: 그렇게 어렵게 말할거 없이, 이세돌을 이길 수 있는 인공지능이 왜 주가 예측에는 적용이 안 된다는거야?

A: 인공지능이라는 것도 결국 패턴찾는 통계 모델이고, 통계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데이터에 패턴이 숨어있어야지. 랜덤인데 어떻게 패턴을 찾냐? 스타(크래프트) 랜덤 종족 고르면 뭐 나올지 어캐 아냐? 아까 저그였으면 이번엔 저그 안 나오냐? 독립사건 몰라?

Q: 그럼 못 하는거야?

A: 과거 주가로 미래 주가 예측하는거 말고, 다른 데이터 찾아봐. 분기 보고서 공시되기 전에 영업 데이터 미리 알 수 있으면 돈 벌겠지. 월가가면 대형마트 주차장 사진 찍어서 매출액 미리 예측하더라.

(채만식의 『치숙(痴叔)』이 생각나는 대화였다. 이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부 동기랑…)

요즘 로보 어드바이저 사업을 하는 회사들 가보면, 위에서 말한 방식의 단순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로보 어드바이져로 이름만 바꿔 붙여놓은 경우가 많다. 그 중 저런 기술적 분석 기반 모델 아이디어가 가장 잘 반영된 적극 투자형 펀드의 수익률은 링크링크의 기사를 참조하시라. 비트코인이라고 해서 다를게 있나? 어차피 과거 데이터로 그 데이터에서 패턴 찾아서 그대로 미래에도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으로 모델 만든다면 비트코인도 다를 바 없다. 근데, 차라리 그냥 주식의 수급만 보고 돈 투자하는게 낫지, 비트코인에는 더 심한 문제가 숨어있다.

 

비트코인 광풍

(Issac Newton, 수학, 우주물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천재지만 정작 South Sea 버블에 전재산을 날린…)

비트코인 광풍이 지난 몇 달간 몰아치는 걸 보면서, 박사 재학 시절 갔던 어느 학회에서 거시경제학 논문 발표하던 분이 내린 “자산 가격 버블의 정의”가 문뜩 떠올랐다. 정상 교육과정으로 자산 가격에 대한 공부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공감하겠지만, “합리적”인 자산의 가격은 그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현금흐름의 총합이다. 제일 쉽게 채권을 생각하면, 매년 만원씩 주는 채권이 있고, 이자율이 5%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 채권의 최대가치는 20만원이다. (그 채권의 만기가 무한대라고 가정하면)

그 논문에서 자산 버블을 모델링할 때 미래 현금 흐름과 같은 Fundamental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 자산의 (투기) 수요과 공급으로 가격이 들쭉날쭉한 부분을 버블로 잡아놨더라. 수요가 계속 몰리는데 공급량은 정해져 있으니 가격이 폭등하다가, 더 이상 투입될 돈이 없어지는 시점이 오면 그 가격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결국은 가격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원래 Fundamental로 정해진 가격이 아니라, 투기 수요로 유지된 가격이었으니 가격 하락은 더 큰 하락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수요/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있으면 (엄밀하게 말하면 공급 증가는 미미하니 사실상 수요 중심의 가격 결정), 수요가 어떻게 유입되는지로 가격 예측을 할 수 있을텐데, 광풍의 수요 움직임을 어떻게 예측할까? 합리적인 가치를 계산해서 자산을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하는걸 “투자”라고 하고, 수요가 몰리는 걸 보고 따라서 움직이는 양떼식 (Herding behavior) 돈 쏠림을 “과열”이라고 부른다. 과열된 시장을 영어 표현으로 “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설명이 안 된다는 뜻이다. 설명이 안 되는 수요 광풍을 도대체 어떤 모델로 어떻게 복제해 낼 수 있을까?

딥러닝은 다른거 아니냐고? 수요 광풍이건 뭐건 다 찾아낼 수 있는거 아니냐고? 저 위에 썼듯이, 딥러닝은 신경망 모델을 좀 무겁게 만든거고, 신경망 모델은 회귀분석 모델을 여러개 겹친거다. 그리고 회귀분석 모델들은 패턴없는 무작위 랜덤 데이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Issac Newton이 했던 말을 살짝 바꿔서 쓰면,

“Deep Learning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

 

가상화폐의 본질적 가치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본질적 가치는 크게 두 가지다. 블록체인을 위시한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매개체, 그리고 어쨌든 “화폐”니까 교환가치. 후자인 교환가치는 각국 정부들이 현재 운용하고 있는 자국의 화폐와 교환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해줘야하는데,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 쓰는 식의 큰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경제 사이즈가 큰 나라들 몇 개에서 승인을 해줘야 한다. 이럴려면 가장 결정적인 요건이 그 화폐 가치의 안정성인데 (잘못하다가는 국부가 다 빠져나갈수도 있으니까), 매일 초단위로 가격이 날뛰는 자산에, 언제 거래소가 문 닫을지 모르고, 또 아무런 컨트롤 타워도 없는 화폐에 어느 정부가 교환 가치를 인정해줄까? 그런 정부가 있다면 국민들이 “무능”을 이유로 당장 “탄핵”해야한다. 멋 모르고 승인해줘놓고 조지 소로스 같은 헤지 펀드 장난꾼들한테 공격 당해서 가격 대폭등/대폭락 몇 번 겪고, 국부 왕창 유출되고, 환율 폭등하고, 그렇게 허덕이다가 IMF 구제금융 맞아봐야 정신차릴까?

결국 가상화폐의 핵심적인 가치는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저비용, 고효율로 유지시켜줄 수 있는 블록체인의 가치 밖에 없다. 국내 전자상거래는 일단 제쳐놓고, 국외 거래만 놓고보면, 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에서 전세계 외환거래 내역을 보면 알겠지만, 그 금액이 크고, 또 나라별 시차 때문에 생기는 변동성 때문에 수수료가 꽤나 큰 시장이다. 예전에 국제 송금을 최단시간에 할 수 있다는 회사들의 수수료를 보면 거래 금액의 10%를 넘는 큰 금액이었는데, 요즘 블록체인 기반의 여러 스타트업들이 변동성 위험을 스스로 떠 안는 방식으로 수수료를 내재화하면서 0.1% 미만의 아주 낮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마 이런 경쟁이 한 동안 지속되고 나면 언젠가는 전형적인 Bertrand competition 시장(최저가 가격 경쟁 시장)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환기간 동안에는 기술력 있는 회사들이 지대(Rent, 초과이윤에 대한 경제학 개념)를 챙겨먹는 시장이 한동안 형성되겠지.

말을 바꾸면, 세계 화폐 시장이 “통일 -> 분리”되면 될수록 당장은 가상화폐의 가치가 증가하는게 상식적이다. 그런데 브렉시트(Brexit)할 때 가상화폐들 가격이 폭등했나? 전세계 2위 화폐인 유로에서 전세계 5위 화폐인 파운드화가 떨어져 나가고, 런던 금융 시장이 외환거래만큼은 전세계 최대 시장인데, 저렇게 외환 거래 수수료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거기에 쓰일 핵심 기술의 가치는 맞춰서 증가했나? 브렉시트 발표와는 관계없이 비트코인은 매일같이 단순한 널뛰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시장이 가상화폐의 블록체인 시장 내 가치를 그렇게 대단하게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 (물론 비트코인같은 초창기 가상화폐가 아니라, 더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낸 가상화폐는 또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놓는다.)

 

서민의 꿈? 한탕의 꿈!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비트코인에 “물렸다”며 울상이더라. 정부가 신규 유입을 막는 식의 “사회주의” 정책을 펼쳐서 “서민의 꿈”을 짓밟는다는 역성을 내던데, 밥먹다 체할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지만, 보시라고 한 두마디 달아본다.

신규 유입을 막는다고 가격이 폭락하는 자산은 수요/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움직이는 자산이니, 저 위의 정의에 따르면 “버블”이 낀 자산이다. 단적으로 부동산 거래에 세금 폭탄을 때려놓으면 다른 투기 과열지역 (ex. 세종시) 아파트 가격은 떨어져도 서울 강남의 집 값은 어지간해서는 안 떨어진다. 대한민국 부촌의 상징이라는 내재가치가 그 가격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신규 유입을 막는 정부 정책은 이미 물린 사람들은 빨리 팔고 나오고, 안 물린 사람들은 더 이상 피해보지 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정책이다. 더 빨리 이런 액션이 취해졌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아마도 정부라는 조직이 뭐 하나 결정하는데 느려터진 조직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으리라 짐작한다. “서민의 꿈”이라는 단어는 아마 “한탕의 꿈”라는 단어로 바꿔야될 것 같고, 버블이라는 걸 알면서도 뛰어든 자신의 주체못하는 욕망을 탓해야하지 않을까? 그게 버블이라는 것도 몰랐다면, 그 정도 지식 수준으로 투자(Read 투기)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지. 가만히 놔뒀으면 “서민의 꿈”을 부르짖던 당신들 자신이 IMF 구제금융 Ver. 2를 일으킬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지난 몇 달동안 비트코인 가격 폭등을 대부분 한국의 몇몇 젊은이들이 이끌었다는 외국 언론의 보도에 비춰볼 때, 외국인이 소유했다가 고가로 팔린 비트코인들을 한국인들이 매수했고, 이걸 더 비싼 가격에 못 판다면 결국엔 한국인들이 그 손실을 떠 안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이 상품의 내재가치가 없고 수요/공급으로만 가격 상승이 이뤄졌다면 언젠가는 버블이 터지지 않을까? 그 때 그 손실은 누가 떠 안아야 할까? 차라리 지금 약간 손실보는게 국가적으로는 덜 손해가 아닐까? 한국인들이 더 이상 시장에 진입하지않고 이탈자가 늘어나면 비트코인 가격은 광풍 이전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다. 수요/공급으로 움직이는 시장이니 수요가 빠지면 당연히 가격이 빠지겠지.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장에 개입하는 정부가 어딨냐는 X소리는 또 뭐냐… 자본 시장 규제 안 하는 국가 없고, 한국 같은 나라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까봐 여러가지 방어막이 잔뜩 갖춰진 나라다. 버블이 터지면 책임은 누가지는데? “서민의 꿈”을 외치는 당신들이 그 버블의 후폭풍을 다 책임질 수 있나?

필자가 정부에 불만이 한 가지 있다면, 이걸 왜 이렇게 늦게 규제했는지에 대한 아쉬움 정도 밖에 없다. 나라가 크고 시장이 이런 금융 버블 충격을 잘 흡수할 수 있으면 큰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나라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버블 하나 터지면 국민 경제에 치명상을 입는다. 더 늦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완전 거래 정지가 아니라 단계적인 절차를 밟을만큼 시장 충격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 한국 정부가 1997년이나 2007년 대비 훨씬 더 버블에 대처하는 경험치가 쌓인 티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뿐이다.

몇 년 지나고 나면, 1997년에는 아시아에서 국가 단위로 단기채에 과잉 의존하는 도박을 했고, 2007년에는 미국 월가 대형은행 단위로 서브 프라임이라는 상품을 발행하면서 도박을 했고, 2017년에는 한국의 개미 투자자 단위로 비트코인이라는 실체없고 기술력 낮은 가상 화폐에 돈을 붓는 도박을 했다는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레 생긴 버블이 터지면 나라가 몇 년 동안 겨우겨우 끌어올린 GDP가 한번에 몇 %씩 빠져나간다. 그 손실을 결국에는 국가가 다 떠 안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Lender of last resort (최후 대부자)라고 부르고, 그 손실을 국가가 다 못 떠 안으면 그 나라는 IMF 같은 기관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한다. 1997년에 봤듯이 매우매우 굴욕적인 조건으로. 캐나다의 속지가 되어버린 Newfoundland처럼 극단적으로는 나라가 망하고 다른 나라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몇 년쯤 지나면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버블의 예시로 네덜란드 튤립 대신 한국 젊은이들의 비트코인 광풍이 나올 것 같다. LSE에서 공부하던 시절 만난 네덜란드 친구가 자기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휩쓸려다니는 바보인지 너무 잘 보여주는 사례인거 같아서 쪽팔리다던데, 몇 년 후에 필자가 외국인 친구만나면 그런 이야길 해야될 판국이다ㅠㅠ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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